식사와 나 사이에 놓인 스크린
현대인의 식사 시간은 더 이상 단순한 끼니를 해결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영상을 보거나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밥을 먹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식사 시간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시간이었고, 때때로 뉴스 기사나 SNS 피드를 훑는 틈에 반쯤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식사는 내게 온전한 경험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동시에 처리하는' 일의 하나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끼라도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입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식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 시도한 날, 밥상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자리에 앉았을 때 느낀 감정은 솔직히 어색함이었다. 손이 허전했고, 입은 움직이지만 머릿속은 뭔가 빠진 듯한 느낌.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음식의 맛과 온도, 질감에 주의가 가기 시작했다. 국의 온도 변화, 반찬의 짭짤함, 밥알의 고슬고슬함 같은 감각이 선명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보를 흘려보내며 먹었는지 실감했다.
더 흥미로웠던 건, 식사 시간이 훨씬 짧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30분이 넘도록 식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영상을 보느라 시간이 지루하게 흘렀다면, 디지털 없이 식사를 하니 오히려 집중력 있게 천천히 먹게 되었고, 15분 정도가 훨씬 알차고 풍요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식후의 만족감이 훨씬 컸다.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고, 포만감과 함께 심리적인 안정감도 더해졌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닌, 나와 음식 사이에 감각적으로 연결된 경험이었다.
몰입을 통해 되찾은 감각의 풍요로움
디지털 기기를 멀리한 식사 시간은 내게 잊고 지냈던 감각의 풍요로움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 모든 감각이 식사라는 행위에 집중되자 음식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접시에 무엇이 올라와 있는지도 모른 채 음식을 입에 넣고 넘기기 바빴다면, 이제는 하나하나의 재료와 그 조합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향신료의 은은한 향, 국물의 온도,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을 때의 미세한 감촉 같은 것들이 식사의 질감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식사를 ‘시간 때우기’ 혹은 ‘배를 채우는 일’ 정도로 여겼다.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영상이나 피드를 보며 멀티태스킹을 하던 날이 많았다. 하지만 전자기기를 멀리하고 식사에 몰입하게 되면서, 음식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자 감각의 축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식재료가 입 안에서 천천히 풀리는 느낌, 음식을 씹을 때마다 달라지는 질감과 소리, 그리고 마지막 한 숟갈까지 남기지 않고 음미하는 만족감은 디지털 화면 속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생생한 감각의 경험이었다.
이 몰입은 단순히 미각의 확장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음식에만 집중하다 보니 하루 동안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가끔은 식사 중 눈물이 날 만큼 감정이 복받치는 순간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오롯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실존적인 안정감이 나를 감쌌다.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내면과의 대화, 감정 정리, 그리고 마음 챙김의 시간이기도 했다. 정보의 과잉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며 살고 있었고, 식사는 그런 억눌린 감각들을 해방시키는 기회의 순간이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또한, 디지털 기기 없이 식사하는 동안 대화의 질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가족이나 동료와 함께 식사할 경우, 모두가 스마트폰 없이 식탁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서로의 표정을 읽고,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이 풍성해졌다. 이전에는 대화가 단절되거나 단순한 정보 교환에 그쳤다면, 이제는 진심이 오가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식사에서는 대화의 깊이가 달라졌다. 무엇을 먹었느냐보다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음식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 조용한 몰입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것들—음식의 색감, 조용한 씹는 소리, 상대방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내 삶에 들어왔다. 몰입을 통해 되찾은 감각은 단지 식사 시간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후에는 책을 읽을 때, 산책을 할 때,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몰입의 힘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디지털 세상이 주는 편리함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각의 풍요가 있었다.
디지털 식습관을 돌아보며
이번 실천을 계기로 나는 나의 디지털 식습관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단순히 스마트폰을 옆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식사 태도와 식습관, 심지어 건강에까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변화한 것은 '속도'였다. 기기를 손에 든 채로 식사를 할 때는 끊임없이 화면에 주의를 빼앗기면서 먹게 되어 음식을 삼키는 속도나 양 조절이 어려웠다. 하지만 몰입해서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게 되고, 과식이나 폭식의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또한, 식사 후의 심리적 포만감도 달랐다. 예전에는 식사를 마친 뒤에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허전함이 남았다. 그런데 이는 실제 배고픔이 아니라 '주의 분산 상태'에서 발생한 심리적 공허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몰입해서 식사하면 음식 자체가 가진 정서적 안정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덕분에 식사 이후의 간식 섭취나 불필요한 군것질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건강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으며, 에너지 수준 또한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식사는 단지 생존을 위한 행위가 아닌, 나 자신을 돌보고 감각을 되살리는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지털 기기가 식사에 침투한 시대 속에서, 그것을 잠시 멀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금 인간적인 리듬과 감각의 충만함을 회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하루 한 끼 정도는 반드시 디지털 없이, 나와 음식, 그리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식사 시간을 실천해 나가려 한다.